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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마에스타/일상

재즈의 아버지, '찰리 파커'

안녕하세요 마에스타 뮤직 아카데미 입니다!

오늘은 재즈 비밥의 거장, 색소폰 연주자 '찰리 파커'에 대해 소개를 해보려 합니다!


재즈를 배우는 분들이라면 절! 대! 로! 알아야하는 아티스트 중 한 명이지요!

재즈 연주자가 찰리 파커를 모른다?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해도 무방하답니다^^;


자 그럼 바로 시작해보도록 할게요~!



찰리 파커 (Charlie Parker) 색소폰연주가


출생-사망

1920년 8월 29일, 미국 - 1955년 3월 12일


캔자스시티를 거점으로 활동하던 유명 빅 밴드였던 카운트 베이시를 보고 밴드 연주에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첫 프로 데뷰 무대와 녹음도 제이 맥샨이 이끌던 지역 빅 밴드의 단원 자격으로 치뤘었다한다.

하지만, 마약에 쩔어 살던 생활 습관을 보여주던 찰리파커는 멤버들과 리더의 신경을 꽤나 거슬렀다.

 자신도 빅 밴드의 획일화된 연주 방식에 불만이 많았고, 이후에도 빅 밴드 협연 기회를 반기지 않았다.



그뒤로 그의 삶은 1940년대 초반에 얼 하인스의 밴드에서 잠시 일하다가, 

밴드의 트럼펫 단원이었던 디지 길레스피와 함께한 소규모 잼 세션을 통해 조금씩 주목받기 시작했다.

당시 신인 뮤지션들의 잼 세션은 정규 공연 시간이 끝난 한밤중이나 이른 새벽에 운영하는 클럽(소위 애프터아워즈 클럽)들인 클라크 먼로 업타운 하우스나 민톤스 플레이 하우스 등지에서 이루어졌다.


2차대전 후반기였던 1944년부터 소규모 세션에서 공식 그룹 활동으로 전환하면서 일반 대중들에게도 어필하기 시작했는데, 

춤추기 좋은 규칙적인 리듬과 감미로운 멜로디 일색의 스윙/빅밴드 팬들에게 이는 거의 신성모독처럼 여겨져 엄청난 논쟁을 유발했다.

이 과정에서 '비밥(Bebop)'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그는 그뒤로 Ko-Ko와 Now's The Time, Billie's Bounce, Thriving on a Riff 네 곡을 취입했는데, 

 두 곡은 기존 유행가나 연주곡의 코드 진행이나 리프를 바탕으로 싹 갈아엎어 2차 창작한 것이었고 후자의 두 곡은 파커의 자작곡이었다. 

이 녹음들은 지금도 비밥 초창기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높이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아까 위에 말했듯이 파커는 마약 복용때문에 디지 길레스피와 오래가지 못했다.


이제 그의 음악성향을 말해보자면 연주 실력 외에도 꽤 많은 작품을 만든 작곡가로서 높이 평가를 받았다.

비밥 시대의 창작곡 성향에 관해서는 파커 작품만 공부해도 충분할 정도로 기틀까지 거의 다 짜놓았다. 

물론 훗날의 프리 재즈처럼 막나간 것은 아니었고, 대부분의 곡들에서 열두 마디 구성의 블루스 양식을 지키는 등 전통에 대한 이해도 충분했다.

그는 코드와 리듬에 대한 감각도 귀신같았는데, 행여 비밥 어법을 제대로 이해 못하거나 자신의 스피드를 따라오지 못해 버벅거리는 세션맨들이랑 같이 연주할 때도 오히려 자기 연주에 따라오게끔 만들어버릴 정도였다. 심지어 마약에 찌든 상태에도 연주만큼은 확실하게 해냈다한다.


한가지 더 얘기하지면, 바로 '비밥'이다.

그의 음악은 '비밥' 혹은 '밥 재즈' 라고도 하며 사실상 창시자로 추앙받았다.

그는 당시 유행했던 빅 밴드 중심의 스윙재즈에 반감을 갖고 있었는데, 다들 알다싶이 스윙재즈는 댄스홀 댄서들을 위한 상업적인 음악이었고 초창기 재즈인  뉴올리언즈 스타일에도 존재했던 '즉흥연주' 요소가 많이 약화되 예술성이 많이 떨어졌다는 이유였다.

실제로도 찰리파커에 의해 창시한 비밥은 미국의 국민음악이었던 스윙시대를 저물게 했다.